마신부님 생애.1

💝 알키메데 마루텔리 교장 신부님 생애

1950년대 중반, 이 땅에 이탈리아 출신의 한 가톨릭 사제가 발을 내딛고. 그분 이름은 아르키메데 마르텔리(Archimede Martelli, SDB). 우리는 그분을 마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신부님께서는 1916년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의 코멧사기오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열 네 살의 어린 나이에 돈보스코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살레시오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이후 선교사가 되어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42년도에 사제로 서품된 마 신부님은 1944년에 중국으로 파견되어 따이렌과 만주 등지, 한국에서 사목하시다가 전남 담양 땅에 잠드시다.

무등산처럼 덕스러운 체구, 80kg의 몸무게, 168cm의 신장, 유난히 검은 눈썹, 움푹 패인 깊고 푸른 눈, 두툼하고 길게 쳐진 매부리코, 솥뚜껑처럼 탐스러운 손, 널짝 만큼 큰 구두, 헐렁한 바지, 이런 것들이 마신부님의 외모였다. 

그리고 약간 서툴면서 목쉰 듯한 한국말, 만사를 포용하는 호탕한 웃음소리, 능숙한 운전, 거기에다 성직자로서 갖춘 정직성, 솔직하며 꾸밀 줄 모르는 인간적 모습, 활동적이고 섬세하며 항상 분망함 속에서도 시간을 요리할 줄 아는 덕인이 바로 마신부님 이었다.

1954년 한국 땅에 발 디딘 이래 30년을 한국인과 함께 살며 성직자로서, 교육자로서, 또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후원자로서 생을 불태운 향년68세의 고희(古稀)를 앞둔 노스승 마신부님은 일생동안 남에게 아낌없이 주는 생활로 일관해 오시다가, 

1982년부터 앓아오시던 골수암이 폐렴과 합병증세를 일으켜 끈질긴 투병을 하시던 중 1984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6일 밤 9시 50분 서울 가톨릭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선종(善終)하셨다.

마신부님은 평생을 교육자로서 돈ㆍ보스꼬 정신을 한국 땅에 심어 오셨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한없는 자선을 베풀어 주셨다. 이제 그의 유덕은 사레지오 역사와 더불어 길이 간직될 것이다. 

1. 시인「빌리지우스」의 고향 「만또바」에서 출생

마신부님의 태어난 고향은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시인「빌리지우스」의 고향으로 유명해진 북부 이탈리아「만또바」에서 1916년 11월23일 4남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농(富農)은 아니었지만 농장을 가꾸고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비교적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가족 중「막시밀리안」이라고 부르는 누나 한 분이 계셨는데 가톨릭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큰 명성을 올렸다. 누나는 수녀가 되기 위하여 수련장을 찾아갔으나 안질 때문에 입소하지 못하고 크게 실망하여 고민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난 후 성지인 루르드에 가서 성모님께 「내 눈을 고쳐달라, 아니면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애원했다고 한다. 그 후 고향에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병했으나 2개월 후 그만 선종하고 말았으니 그 해가 1938년이었다. 

그 후 「만또바」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성녀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며 누님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마신부 가문의 자랑으로 여겨진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4개월 후 마신부님의 어머니는 병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셨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2. 선교사로 출발, 1942년 일본「도쿄」에서 사제 서품

고향「만또바」에서 국민학교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이 되던 해「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도시로 유명한 「베로나」의 살레시오기숙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2학년까지 공부하였다. 그 후 중학교 3, 4학년 때 「또리노」시에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에 지원하였는데 그 해가 1930년, 그러니까 14세 때의 일이었다. 2년 간의 수련기를 마치고 첫 서원을 한 후 선교사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일본에 건너온 신부님은「미야사끼」 살레시오 예비대학에서 기초과정을 마치고 「도쿄」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1942년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선교사의 꿈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