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부님 생애.5

8. 은퇴 그리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삶

마신부는 퇴임 후에도 교장 재직시부터 해오던 전남북지구 고아원과 미감아 정착촌 29개 시설을 찾아다니며 1년에 2,15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학용품을 대어주고, 그들이 수용된 시설에 TV와 회관 건립 및 복지시설을 갖추어줌으로써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맛보며 살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 주었다. 

심지어 암과 투병하며 결국 폐렴합병증으로 돌아가시기 한달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은인들의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수없이 발송했다. 정착촌 어린이들이 마신부의 영전에 바친 마지막 편지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아이들을 사랑했으며, 아이들 또한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장례는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에 의해 주재되었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그의 제자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전남도지사, 광주시장을 비롯하여 전남 광주지역의 성직자, 교직자, 신자들과 그를 알고 애도하는 광주시민들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장례식은 그가 제자들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학교대강당에서 치러졌는데, 자리가 부족하여 주변 운동장까지 조문객으로 가득 찼다. 장례식이 끝나자 대형 영정을 앞세운 장례행렬은 광주시민들의 애도 속에 명예시민이었던 광주의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돌며 그분의 30년 동안의 광주 생활을 마감하고, 스스로 택하신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일생과 가장 일치하는 말은 “나는 내가 택한 길을 나의 인생에서 결코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라는 것이다.

“나는 마신부님이 화를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장례식에 참석한 대부분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였다. 그는 민중 속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민중과 함께 우는 법과 민중과 함께 웃는 법을 알았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어려웠던 시절의 침울한 사회에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는 진정한 낙천주의자였다.

그는 결코 “안돼!” 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맞이했고 모든 사람을 편하게 느끼도록 처신하였다.

그는 교장이었을 때도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소변기 속에 학생들이 버린 휴지조각을 손으로 집어내고, 수세식 화장실이 거의 없었던 시절에 학생들에게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막히고 또 막히는 대변기를 뚫고 또 뚫고 다녔다. 그러나 그는 결코 불쾌감이나 실망을 보이지 않았고 인내롭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