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동문회ㅣ마신부님생애4

■ 살레시오고 11회동문회ㅣ살레시오고 서울동문회ㅣ살레시오고 총동창회

일본에 돌아온 마신부는 다시 선교활동에 전력하면서 청소년 교육과 고아원 사업에 몰두하다가 나가즈 보스코 중학교 교감이 되었고, 다음 해에는 동경 실업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6ㆍ25사변이 발발하여 가는 곳마다 전흔이 얼룩진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에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미국인 신부「카폰」이 전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 군종신부단에서는 그가 장렬하게 전사한 한국에 카폰 신부를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 사업을 당시 광주교구를 맡고있던 미국주교 하롤드 헨리(Harold W.Henry) 교구장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현대주교는 이 정신에 적극 찬동하고 적절한 사업을 물색하던 중 한국에 가장 절실하고 긴요한 사업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고, 일본에 진출해 있던 살레시오회를 초청, 한국에 돈ㆍ보스꼬 정신에 따라 청소년을 교육하는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마침 패기와 열정에 넘친 38세의 마신부가 당시 일본 관구장 탓시나리 신부의 임명을 받고 1954년 11월에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마신부는 1954년 광주시 중흥동에 부지 2만5천평을 매입, 곧 정지작업을 완료하고 김창섭(현아세아 극장주인. 김재균 전 국회의원 부친) 씨를 선정하여 학교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당시 CAC사령관이었던 송호림 사령관이 군장비를 동원해 주었고, 한국인들의 따뜻한 배려로 성금이 모금되고 살레시오회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우선 12칸 교실을 신축, 1956년부터 중학교 문을 열어 초대 교장에 마신부가 취임하고, 1958년에는 고등학교를 병설하여 중·고 초대 교장으로서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단시일 내에 사학명문으로 만들었고, 호남교육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마신부는 한국살레시오수도회을 창립하고 회원들을 양성하여 한국살레시오수도회가 오늘날 같이 발전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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